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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비가 오면 우산을 챙겼을까?

최종규 기자 / 사진비평

1986년 4월 26일에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터졌습니다. 그무렵 저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는데 학교나 마을이나 집에서 핵발전소 이야기를 딱히 못 들었다고 떠오릅니다. 이제는 우크라이나이지만 예전에는 소련이라는 이름이었고,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웬만하면 가로막히던 때예요.

그무렵 어른들한테서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지니, 비가 오면 꼭 우산을 쓰라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습니다. 요즈음은 도시에서 가만히 비를 맞고 노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테고, 어른들도 비를 쫄딱 맞으면서 마실을 다니지 않으리라 느끼는데, 지난날에는 아이도 어른도 으레 비를 맞곤 했어요.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놀기를 즐기고, 어른들은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쓸쓸함에 젖는달까요. 예전에는 굳이 우산을 챙기지 않았어요. 비가 안 오면 좋고, 와도 안 나쁘다는 생각이었어요.

 

정성태 님이 빚은 사진책 《체르노빌》(눈빛,2016)을 읽는데, 책머리를 보면 사진가 정성태 님이 어릴 적에 겪은 ‘비 맞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성태 님은 어릴 적에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먼지” 때문에 비를 맞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요. 저는 이런 말까지는 못 듣고 그저 ‘산성비’라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무렵 어른들은 참말을 제대로 털어놓지 않은 셈이지 싶어요. ‘먼지비’도 ‘산성비’도 아닌 ‘방사능비’라고 하는 참말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은 우리가 비를 맞지 못하도록 했다.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먼지가 빗물에 섞여 내린다는 게 이유였다. 그 후로 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다녔고, 비를 맞지 않았다. 천구백팔십육년 사월 무렵이었다.

저는 몇 해 앞서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2014)라는 책을 읽다가, 이 책에서도 체르노빌이랑 한국하고 얽힌 이야기를 하나 보았습니다. 1986년에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뒤, 유럽마다 목장에서 우유에 방사능이 어마어마하게 나와서 유럽에서는 목장마다 우유를 그냥 다 버려야 했다는데, ‘방사능 우유’를 아무 데나 버릴 수도 없어서 골머리를 앓았대요. 그즈음 유럽 여러 나라는 ‘방사능 우유’를 ‘분유’로 바꾸었고, 분유로 바꾼 ‘방사능 우유’를 아주 싼 값에 한국으로 많이 수출했대요.

스리마일(드리마일)은 미국이고, 체르노빌은 소련(우크라이나)이고, 후쿠시마는 일본입니다. 무섭게 터지고 만 핵발전소가 있던 세 나라는 지구에서 손꼽히는 힘센 나라입니다. 과학기술도 세 나라가 지구에서 손꼽힐 만큼 앞서지요. 세 나라에서는 핵발전소가 터지리라는 생각을 안 했을는지 몰라요. 세 나라에서 살던 여느 사람들은 제 나라 핵발전소가 조금도 걱정스럽지 않다고 여겼을는지 몰라요. 그러나 세 나라 핵발전소는 터졌고, 그 뒤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며, 이 아픔하고 생채기는 아직 가실 줄 몰라요.

 

한국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어쩌면 한국은 안 달라질까요? 한국에서까지 핵발전소가 터져야 비로소 이 나라가 달라질까요?

사진책 《체르노빌》은 1986년에서 서른 해가 지난 오늘날 그 나라 그 마을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모습을 조용히 짚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설 수는 없되, 살몃살몃 다가가서 조용히 지켜보고 조용히 물어보며 조용히 듣습니다. 방사능 바람이 부는 그 쓸쓸한 터에도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새삼스레 바라보고 새삼스레 느끼며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진 뒤 소련은 시멘트로 이 발전소를 덮었다는데, 서른 해가 지난 요즈음 ‘시멘트 돔’이 낡아서 무쇠로 다시 돔을 덮으려 한다고 해요. 사진책 《체르노빌》을 보면 쓸쓸한 마을에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는 모습이랑 나란히 아주 커다란 ‘무쇠 돔’이 보여요. 유럽부흥개발은행에서 자그마치 1조 8842억 원이나 들여서 지은 무쇠 돔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108미터이고 길이는 162미터인데다가 무게는 36000톤이나 된대요.

이쯤에서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핵발전소 하나를 짓는 데에 돈을 얼마나 들였을까요? 핵발전소 하나가 터지고 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아프면서 ‘얼마나 많은 돈이 나가야’ 했을까요? 서른 해가 지난 오늘날에도 거의 2조 원에 이르는 무쇠 돔을 만들어서 새로 덮으려 하며 그야말로 얼마나 많은 돈을 바쳐야 하나요?

 

돈만 따질 노릇이 아닙니다만, 돈 한 가지만 보더라도 ‘핵발전소에 들일 돈’으로 ‘100퍼센트 깨끗한 전기’를 작은 마을과 큰 도시 모두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투자에 썼다면, 어느 누구도 걱정할 일이 없으리라 느껴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얘기예요. 커다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는 그만 지을 노릇이고, 마을과 여느 작은 살림집에서 조그맣게 자급자족하는 전기로 바꿀 노릇이라고 느껴요.

사진책 《체르노빌》은 이런 얘기까지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사진책 《체르노빌》에 깃든 모습과 속내와 사람들과 마을 흐름을 살피다 보면, 이 작고 수수하며 예쁜 살림을 지으려는 참으로 작고 수수하며 예쁜 사람들이 바라는 삶이란 ‘따스한 사랑’이로구나 싶습니다. 눈이 오면 마당을 쓸고, 손님이 오면 반가이 맞이하고, 집 안팎을 곱게 가꾸고, 아기자기한 살림으로 아이를 낳아 돌보다가 늘그막을 고요히 아늑히 즐거이 누리는 길을 걷고 싶은, 작고 수수하며 예쁜 사람들은 큰 것을 바라지 않아요.

 

사람 발자국을 찾아볼 길이 없는 ‘버려진 집과 건물과 마을’을 담은 사진을 바라봅니다. 이 사진을 보면 풀하고 나무는 참으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머잖아 풀하고 나무는 ‘방사능 찌꺼기’를 모조리 덮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몇 조 원을 들여서 시멘트를 붓고 무쇠로 덮으려 하는데, 풀하고 나무는 그저 스스로 돋고 자라면서 방사능을 걸러 주고 푸른 바람을 새로 내뿜어 줍니다.

 

어쩌면 풀하고 나무야말로 더없이 멋진 기운(에너지)이로구나 싶습니다. 풀하고 나무는 해마다 꾸준히 자라요. 예부터 사람들은 풀을 먹고 나무를 때면서 살았어요. 풀 열매는 곡식이 되고, 나무는 땔감뿐 아니라 집을 짓는 기둥도 되어요. 나무로 책걸상을 짜고, 나무로 종이하고 연필을 빚어요. 그리고 이 푸나무는 햇볕하고 빗물하고 바람을 먹으며 자라지요. 100퍼센트 깨끗한 기운(에너지)을 받아서 크고, 100퍼센트 깨끗한 기운을 사람한테 주는 얼거리라고 할까요.

 

체르노빌 때문에 아파야 했던 사람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체르노빌 때문에 아플 사람이 많으리라 봅니다. 한국하고 이웃한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때문에 아파야 한 사람이 많고, 앞으로도 후쿠시마 때문에 아플 사람이 많을 테지요.

한국에서는 앞으로 어떤 삶과 살림이 태어날까 하고 돌아봅니다. 한국에서도 아파야 할 사람이 나오고야 말는지, 이제 한국에서 만큼은 아픔을 끝낼 만한 사회 얼거리가 될 만한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하루를 짓는 몸짓인지, 또 우리는 아이들한테 어떤 터전과 마을을 물려주려는 몸짓인지, 사진책 《체르노빌》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새롭게 되새깁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우산을 안 챙기’고도 ‘맑고 싱그러운 빗물’을 혀로 낼름낼름 받아먹을 수 있는 날을 그려 봅니다.

 

2016.11.18.

최종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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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6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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