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Text

[사진 속으로]사모셜리 

송수정 전시기획자 / 사진비평

이념은 영토를 나누지만, 어떤 사건은 이 경계 자체를 초월해 버리기도 한다. 가령 체르노빌 원전 폭발처럼. 히로시마 원자 폭탄보다도 파괴력이 컸다는 이 사고는 냄새와 소리도 없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전 지구적 재앙이었다. 이때 국경도 이념도 인간의 존엄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투입한 로봇도 녹아내렸으니 사람과 동물이 살아남을 리 만무했다. 수습은 느렸고, 원인 규명은 지지부진했으며 이주 명령은 방사능에 완전히 노출된 뒤에서야 내려졌다. 1986년 4월의 비극은 진행형이어서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는 여전히 버려진 땅이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프리피야트라는 이 지역은 원자력 발전소와 함께 세워진 신도시이자 노동자들의 복지를 최선으로 배려한 꿈의 도시였다. 

‘사모셜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온 이들을 가리킨다. 우크라이나 말로 자발적 정착민을 뜻하는데, 뒤집어 보면 불법 정착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50~300명으로 추정되는 이들 대다수는 사고 당시 며칠 만에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정부의 말만 믿고 피난길에 올랐던 애초의 정주민들이다. 평균 연령은 70대. 원자력은 완전무결한 에너지라 교육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여생에 대한 미련이 많지 않거나 혹은 딱히 기댈 곳이 없는 이들에게 프리피야트는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가장 익숙한 고향이었다. 정성태는 여섯 차례에 걸쳐 이들을 방문했다. 집 안은 동유럽 특유의 화려한 색들로 충만하고, 마치 시간이 멈춘 중세 어느 마을처럼 평화롭다. 다만 죽음의 땅에서 자급자족을 해나가야 하는 이 마을의 비밀에 대해서는 침묵할 뿐이다. 아직도 프리피야트에는 사고가 나지 않은 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2017년 4월 7일자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062041025&code=990100#csidxac6fcb185f3f22ea5dc4f2791f70d79

bottom of page